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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과 나눔

「1967년 의 여름은 특별히 무덥고 습기가 많았다. 나는 케시 언니와 체사피크 해변으로 달려가 짙푸른 바닷물에 뛰어 들었다. 나는 좁은 풀장 에서 헤엄을 치는 것보다 확트인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멀리 있는 뗏목까지 수영 경주를 했다. 목표한 뗏목까지 헤엄쳐서 도달한 나는 뗏목에 올라가서 바다물 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충격으로 정신이 멍해졌다. 바다 밑의 바위에 머리가 부딪힌 것이다. 온 몸이 경련을 일으켰으며 힘이 빠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전기 감전과도 같은 강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도 아프지 않았다.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바위에 부딪혔던 얼굴은 다시 바다 밑에 깔린 모래에 쳐박혔지만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 정신은 말짱해서 근육을 움직여 헤엄을 쳐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숨을 죽이고 기도하면서 기다렸다. 물 속에 거꾸로 쳐박혀서 말이다.
1 분 정도 흘렀을까. 캐시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찾아 물 위로 들어 올린 그녀는 나를 어깨에 메고 해안을 걷기 시작했 다. 캐시의 어깨에 드리워진 나의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은 채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소름끼치는 공포가 밀어 닥쳤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발티모아 시립병원으로 옮겨졌다.
쉐릴이라는 이름의 의사가 나의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전기 이발기계로 싹둑 잘랐고 간호사가 내 머리를 짧게 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전기 드릴이 작동되는 고음을 들으며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의사가 나의 두개골 양쪽에 하나씩 두 개의 구멍을 뚫고 있는 동안 누군가 가 나의 머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본 것이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부목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음 젓가락같이 생긴 금속 젓가락을 나의 머리에 뚫린 구멍으로 집어넣어 이 막대기와 스프링 장치를 연결시켜 머리를 몸에서 쭉 잡아당길 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의사인 쉐릴은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 놓았다. “조니,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다시 걸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팔도 움직이는 데에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나는 몇 달간 더 치료를 받은 후에는 다시 걸을 수 있고 완치될 것을 기대했었다. 갑자기 나의 모든 생활방식이 뒤엎어지는 것을 느꼈다. 스포츠 카도 탈 수 없고 승마도 할 수 없다. 아마 다시는 데이트도 할 수 없겠지. 나는 절망에 빠졌다. 취미와 소유물들 은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마굿간에 매여 있는 말들. 나는 말 잔등에 올라타 서서 잔재주를 부리곤 했었는데, 그 말들을 다시 타는 일은 결코 없겠지. 나는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없게 되었다. 잠을 자거나 숨을 쉬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의지해야 했다.
부목에 싸여 아래 쪽을 내려다 보면 서 나는 뜨겁고 짭짤한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려와 마루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코가 막혀왔고 나는 간호사를 불러야 만 했다. 나는 우는 것조차 도움없이 해내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의 기분은 며칠 후에 더 침체되었다. 학교 친구 두 명이 처음으로 나를 방문했다. 그들이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마지막 이미지는 활기가 넘치는 운동선수의 이미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모습을 보자 놀라서 입을 벌렸다. 한 친구는 밖으로 뛰어나가 구토 를 했고 한 친구는 흐느껴 울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공포스러운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지 의아했다.
나는 거울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거울 속을 들여다 보자마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 하나님. 어떻게 저를 이 꼴로 만들어 놓으실 수가 있지요!” 거울 속에 나타난 사람의 눈은 뻘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 주위에서 머리 뒷 부분까지는 검은 반점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피부색은 칙칙한 노란색으로 변해 있었으며 이빨도 치료로 인하여 검어졌다.
머리는 여전히 짧았고 양 옆에 금속 죄임새가 부착되어 있었다. 나는 흐느껴 울었다. 나는 문병 온 재키에게 “ 오, 재키. 도움이 필요해 나를 위해 한가지만 해줘. 나는 더 이상 내 얼굴을 쳐다볼 수 없어.”
“그게 뭐니? 무엇이든 다 들어줄게.”
“내가 죽을 수 있도록 도와줘. 알약을 가져다 줘. 면도칼도 괜찮아. 이런 괴상한 몸뚱아리로 살 수 없어. 자살할 수 있도록 도와줘, 재키.”
재키는 내가 요구하는 것들을 갖다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너무나 무기력해서 자살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번은 한  문병객이 찾아와 내 기분을 돋구려고 애썼다. 그는 에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이 담긴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장 10절)
나는 그때 아주 비뚤어져 있었고 냉소적이었다. 그런 말은 나에 대한 야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풍성한 생명이라구? 나의 남은 인생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생인데 충만한 생명이라구?” 나는 하나님에게 반항했고 하나님의 처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었다. 하나님이 나에게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3년이나 걸렸다.


나는 장애나 결함이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거울을 보고 한탄하며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듯이 거울을 내려다 보면서 육체적인 상태의 흉악함을 한탄하고 있는 것은 백해 무익한 짓이다. 희망만으로는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바꿔 놓지 못한다. 나는 사지가 마비된 사람으로서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고 세상 과 손잡을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환상의 유혹과 계 속 싸워야 했다. 환상의 유혹이란 눈을 감고 만약에 다시 건강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따위를 상상하는 것이다. 약혼을 하고 스포츠 카를 운전하고 산으로 하이킹을 떠나고 대학 라스로스팀에서 맹활약을 하고… 상상의 가능성은 끝없이 뻗어 나갔다. 그러나 나는 그 상상들과 싸워야 했다. 그 상상들은 쓸데 없는 짓이었다. 나는 그런 상상들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건강해진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내가 나의 현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큰 방해가 되고 지연시키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한 상상과 격렬히 싸워야 했고 나의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필사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목숨을 걸고 나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모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 길밖에 없고 폐인이 되는 길밖에 없고 미치광이가 되는 길 밖에 없다.
                   
몇 달 간 병실에 누워 있은 후 나는 점차 똑바로 앉는 자세부터 연습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간호사가 45도 정도까지 앉는 것을 도와 주었다. 앉기 위해서 고통스런 연습을 반복해야 했다.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된 것도 몇 달간의 고통스러운 물리 요법을 거친 후에나 가능했다. 회복기로 접어든 지 2년 후에 나는 모터장치가 된 휠체어를 썩 잘 조종하게 되어서 병원 복도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왕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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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나는 치아로 펜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연습과 훈련을 하였다. 하루의 대부분은 그림 그리는 것으로 보냈다. 치아로 펜을 물고 섬세하 고 세밀하게 펜을 끄덕이거나 고개를 미끄러뜨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알아 볼 수 있는 형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대학의 연설 강좌를 수강하였고 나중에는 많은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연설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매혹적인 강사라고 부른다. 청중들은 나의 삶에 대한 열정과 열심에 대해 가장 감탄하곤 한다. 나는 강연을 할 때 나의 스튜디오를 둘러싼 작은 집의 경치를 설명한다. “시냇물에 들어가 물장난 치고 말을 탈 수는 없지만 나는 바깥에 앉아서 냄새를 맡고 감촉을 즐기며 아름 다운 경치를 볼 수는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헛간이 있는데 그 헛간은 달콤한 건초 냄새가 있었고 말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있었고 내가 뛰놀던 곳이어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어린 곳이다. 그런데 그 헛간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헛간을 다시 만들기 위해 힘든 작업을 했다. 새로 만들어진 헛간은 불타버린 헛간 만큼이나 좋았다. 나는 그 헛간을 좋아한다. 나의 인생은 그 헛간처럼 한 번 무너졌었다. 그러나 하나님과 친구와 가족의 도움으로 나의 인생은 다시 되살아났다. 내가 왜 이토록 행복해 하는지 이해하겠는가? 나는 항상 충만함으로 가득한 인생을 지금 누리고 있다.


 지금 나는 연회나 캠프, 젊은이들의 모임, 큰 회합등 어디에서나 인기있는 연사이다. 나는 NBC-TV의 'today'쇼에도 출연했 고 나의 이야기는 유명한 잡지에 기재되기도 했다. 나의 작품으로 장식된 카드나 포스터, 문구류는 미국 전역 어디에서나 쉽게 눈에 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나와 헤어질 때 더 행복해지고 더 긍정적이 되곤한다. 나는 이제 거울 속에 보이던 끔찍하 고 험했던 얼굴의 소녀가 아니라 아름답고 밝고 환하고 빛나는 얼굴의 소녀로 변화되었다.


tada.jpg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후인 지금 나의 쾌활한 낙관주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의 얼굴은 생기가 넘치고 눈은 빛나고 표정은 풍부하다고 많은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말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기 때문임을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의 인생은 병원에서 본 거울 속의 비참한 소녀의 모습 그대로 살다가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마감했으리라.


처음에 나는 나의 비참한 상태와  풍성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즉 극도로 비참한 처지에 빠 진 내가 하나님의 풍성함을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활동적인 십대가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여겨왔던 모든 것들이 이제는 다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하나님의 풍성함을 믿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3년간의 눈물과 반항적인 질문의 시기를 거친 후에야 나의 고통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나의 친구인 신디는 침대 옆에 앉아 나를 격려할 수 있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마침내 신디는 다급하게 외쳤다.
 “조니, 예수님은 너의 마음을 알고 계셔. 너는 혼자가 아니야. 왜냐하면 그분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때가 있었거든”
나는 그녀를 응시했다. “지금 무엇에 대해 얘기하는 거니?”  신디는 계속 말했다.
“ 사실이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봐. 예수님은 채찍에 맞으셔서 등에도 상처를 입고 계셨어. 예수님도 자세 를 바꾸거나 몸을 편하게 하고 싶으셨을거야.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어. 십자가에 예수님은 못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으셨거든.” 


신디의 이 한마디의 말은 나의 일생의 운명을 바꾼 위대한 한 마디였다. 나와 똑같은 괴로움을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당하셨다고 생각하니 큰 위로가 되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온 몸이 마비되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예수님의 사랑이 나에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도 사라지고 말았다. 신디를 통해서 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나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하나님은 나에게 점점 큰 존재가 되어갔다. 나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경이로움에 압도되어 갔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우주와 내 삶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치있고 소중한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없이 이런 존재가 될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는 머리를 빗을 수도 없고 옷을 입을 수도 없다. 그러나 나를 돌보아 주는 친구들은 많다. 주위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그림을 그려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신체적 결함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마음의 평안을 항상 풍성하게 허락하셨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있다. 나는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우리의 몸이 하늘나라에 가서 “영화롭게 된다.”고 한다. 고등학교시절에 그것은 모호하고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내가 언젠가 치유되리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기회는 박탈당한 것이 아니라 단지 40년 정도 미루어진 것일 뿐이다.(40년 후에는 천국에서 완전히 치유된 완전한 육신 을 가지고 살 수 있으므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 동안에도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 천국에서 영화로운 몸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제 나는 안다. 이 땅에서 죽고 난 뒤 나는 천국에서 건강한 나의 두 발로 마음껏 춤추며 뛰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Joni_Eareckson_Tada.jpg : 하반신이 마비된 여성 수영 선수 '조니 에릭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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