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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

2018.04.10 06:17 조회 수 : 9

설교일 2018-04-08 
성경본문 로마서 1장 18-32 
설교자 최성묵 목사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 / 로마서 1장 18절-32

 

    1. 서론

 

요즘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란 분에 대하여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분은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 분이신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수석으로 졸업을 하고, 미국 하버드대 박사 과정에서 프랑스 철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철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분이시지요.

 

스물 세 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많은 책들을 썼는데, 2003년 2월 프랑스 문화부 장관에게 문화 훈장을 받기도 했을 만큼 글을 잘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라는 학교를 열어 교장으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분은 철저한 무신론자입니다. 이 분이 쓴,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라는 책이 요즘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가 되고 있는 듯 한데요,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무신론자이면서도 종교에서 주는 유익한 점들을 빼내어 활용할 수 있을 것인 지에 대해서 말해 줍니다. 책 내용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한 편으로는 계속해서 철저한 무신론자로 남아 있으면서도 , 또 한 편으로는 종교가 유용하고 , 흥미롭고,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때때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전제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신다고 하는 생각에서 일생 동안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갖는 것이 유익한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부분 만을 빼 내어 활용하자는 것이지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마음이 서글퍼 졌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에 대하여 그릇된 전제를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서 보여지는 어떤 형식들만 차용한다는 것이 보여주는 논리적인 모순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기독교가 유용하고, 흥미롭고, 위안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라는 핵심 진리 때문인데, 그 핵심을 다 빼고 나서 이야기 하자는 것이 말이 됩니까? 게다가 이 분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어떤 이야기들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잘못된 전통들이 인용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1장 부분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처해 있는 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주의해서 읽어 보면, 무신론자들이 많은 이 시대에,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경 내용 살피기

 

우리는 얼마 전, 오늘 말씀의 앞 절에서,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믿음을 떠난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요? 그게 오늘 말씀이지요. 18절 부터 볼까요?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La colère de Dieu se révèle du ciel contre toute impiété et toute injustice des hommes qui par leur injustice tiennent la vérité prisonnière, car ce qu'on peut connaître de Dieu est évident pour eux, puisque Dieu le leur a fait connaître.

 

‘하나님의 진노’에 관하여 생각하려면, 우리는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유심히 살펴 봐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께서 진노 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진노를 하셨는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자세히 읽지도 않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크게 오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내용 바로 앞을 읽어 보십시오. 여러분이라면 진노하지 않을 자신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런 일을 당하셨다면 여러분 역시 견디기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은 약속들을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이 계약서는 단순히 종이가 아닙니다. 서로의 믿음을 약속한 증거물이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의 수 많은 축복의 약속들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간절히 바라고 기대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약속들 속에는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그 믿음을 버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아담과 하와는 축복된 에덴 동산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들 다 누리도록 허락 받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그들 위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나무의 열매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약속이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떤 환경이 변하고, 시대가 변해도, 변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과의 약속인 것입니다.  

 

이 때, 아담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보다도 옆에서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져서 하나님의 경고를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경고가 현실로 나타나 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려고 해도, 우리 양심상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그럴까요? 20절 말씀 보실까요?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En effet, les perfections invisibles de Dieu, sa puissance éternelle et sa divinité, se voient depuis la création du monde, elles se comprennent par ce qu'il a fait. Ils sont donc inexcusables,

 

이번 주에 우리 장년부 구역예배를 소풍으로 다녀왔습니다. 자연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자역 속에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요. 자연을 바라보면서 이 아름다운 자연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연을 지으신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자연을 보면서 ‘이것은 모두 스스로 되어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좀 더 살펴보고 연구해 보면,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되어지고, 계획되어지지 않고는, 결코 우연히 만들어 질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원리들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양에서는 이런 연구들이 오히려 서양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은데요, ‘사람의 몸이 우주를 담고 있다’, ‘사람의 몸이 소 우주다’이런 이야기들이 깊은 인간 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들인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핑계할 수 없는 사실들 앞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분의 음성을 따르기 보다는 다른 소리 듣기를 더 즐겨 왔죠. ‘늘 들었던 지루한 것보다는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들은 결국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1절에,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puisque tout en connaissant Dieu, ils ne lui ont pas donné la gloire qu'il méritait en tant que Dieu et ne lui ont pas montré de reconnaissance; au contraire, ils se sont égarés dans leurs raisonnements et leur coeur sans intelligence a été plongé dans les ténèbres. Ils se vantent d'être sages, mais ils sont devenus fous, et ils ont remplacé la gloire du Dieu incorruptible par des images qui représentent l'homme corruptible, des oiseaux, des quadrupèdes et des reptiles.

 

하나님을 참으로 알게 되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됩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섬기고 감사하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것을 가장 행복한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이 허망하여 지니… 여기서 ‘허망하여지며”라는 말씀은 ‘비어지고 어리석게 됨’을 말합니다. ‘마음이 어두워져’라는 말씀은 영적 무지 또는 범죄 행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분리된 불신의 상태에 빠져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나니,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로 만드셨으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하나님을 지워 버리고는 자기들보다 더 지혜로운 존재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요.

 

“우리는 수 천년 동안 엄청난 지혜를 축적했습니다. 핵융합의 원리도 찾아 내었고, 생명체의 유전자 구조도 밝혀 내었습니다. 인간의 기억력를 뛰어넘는 컴퓨터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위대합니다! ”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무시하려고 듭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 인간의 지혜가 AI의 위협을 받고 있지요? 바둑 대회에서도 지고, 퀴즈 대회에서도 지고, 이제는 인간을 지배하는 로봇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보니 AI들 끼리 자기들만의 언어를 만들어 대화를 나누면 인간이 오히려 컴퓨터에게 소외될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합니다.

 

과거에 비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과학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의 능가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현미경으로 봐야만 발견할 수 있는 작은 생명체 하나 하나까지도 섭리하시고 다스리시는 그 분의 능력과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자신이 만든 컴퓨터에도 뒤떨어져 가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나니 사람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 버립니까? 온갖 허망한 것을 좆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하면서 자기 마음 속으로는 자기 나름대로의 신을 섬깁니다.

 

그리고, 또한 심각한 것은 무엇일까요? 도덕적, 윤리적 해체입니다. 이것은 점점 더 심해져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것을 지적합니다.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C'est pourquoi Dieu les a livrés à l'impureté par les désirs de leur coeur, de sorte qu'ils déshonorent eux-mêmes leur propre corps, eux qui ont remplacé la vérité de Dieu par le mensonge et qui ont adoré et servi la créature au lieu du Créateur, qui est béni éternellement. Amen!

 

자,  이 글은 거의 지옥과 같은 더러움을 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일반 사회에 만연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C'est pour cette raison que Dieu les a livrés à des passions déshonorantes: leurs femmes ont remplacé les rapports sexuels naturels par des relations contre nature; de même, les hommes ont abandonné les rapports naturels avec la femme et se sont enflammés dans leurs désirs les uns pour les autres; ils ont commis homme avec homme des actes scandaleux et ont reçu en eux-mêmes le salaire que méritait leur égarement.

 

여기는 무슨 내용입니까? 이것은 요즘 진행되는 동성연애, 동성결혼에 관한 내용들이라고 봐도 됩니다.

 

가끔 보면, 동성끼리 친하게 지내는 ‘우정’을 ‘동성연애’와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정 관계에 있는 사람이 서로 성관계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동성연애나 동성결혼(同性 結婚)은 동일한 성별을 가진 두 사람 사이에, 성관계를 포함하여 결합하는 것을 법률적으로 허가하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LGBT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면서 2001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 23개국 이상에서 동성결혼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혼인관계와 유사하게 법적으로 보호하는 국가들을 포함하면 전 세계 35개 국가가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이것에 반하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동성애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고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인류가 가져왔던 가족 관계, 부부 관계에 관한 모든 것을 뒤집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예배 드리는 이 곳의 마흐젤 교회가 속한 프랑스 교단(protéstante uni)도 여기에 동의를 했습니다. 이제는 프랑스 교회 목사들은 설교 중에 동성연애, 동성결혼을 반대하면 안 됩니다. 법적으로 처벌 받습니다.

 

교회가 동성연애자들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거부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동성연애 행위나, 동성결혼은 거부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뭐라고 말씀하는지 편견없이 잘 봐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일부 동성결혼 옹호 신학자들은 일부 성경을 가져다 인용하면서, ‘성경도 동성 연애를 옹호한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이 부분에 대하여 함께 더 나누려고 하는데요 ,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에서는 이것을 ‘부끄러운 욕심’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시니, 그들이 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행동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28절 이하에도 보시면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Comme ils n'ont pas jugé bon de connaître Dieu, Dieu les a livrés à leur intelligence déréglée, de sorte qu'ils commettent des actes indignes.

 

하면서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다음에 다시 살펴 보기로 하고, 32절로 넘어가 봅니다.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Et bien qu'ils connaissent le verdict de Dieu déclarant dignes de mort les auteurs de tels actes, non seulement ils les commettent, mais encore ils approuvent ceux qui agissent de même.

 

이 구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 두기를 싫어합니다.  

 

자 여러분, 성경은 이런 모든 죄악에 대하여 잘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눈감아 주겠다고, 이해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직격탄을 날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런 자리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지금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은 즉시 그 자리를 탈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해 볼까요? 소돔성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정에 두 명의 천사들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롯의 가정을 구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천사들은 롯의 가족들에게 ‘어서 이 죄악된 도시에서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롯의 가족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즉시 떠나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거기에는 늘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있고, 잘 지어 예쁘게 꾸며 놓은 집도 있고,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농장도 있었고, 잘 길러 놓은 수 많은 가축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금고에 보관된 많은 금은보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즉시 그 성을 탈출하라고 재촉합니다. 절대로 뒤를 돌아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해줍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빨리 이 죄악 도시를 벗어나라고! 그래서 모든 것을 놓고 즉시 성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롯의 부인은 그 성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살짝 고개를 돌려 그 성을 아쉬운 듯 바라봅니다. 아, 그 순간! 그녀는 그 자리에서 굳어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립니다.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을 주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3.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로마서 1장 1절부터 17절까지 복음의 놀라운 능력에 감동하고 그 은혜 안에 있음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셨다면, 우리는 어찌 되었을까 안도의 한 숨을 쉽니다.

 

그러나 18절부터 이어지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다시한 번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에 대하여 절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 예수님을 알지 못할 때 가졌던 생각들을 돌아보며 아찔한 생각마저 듭니다. 혹시 아직도 이런 죄에 머무르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까 ?

히브리서 말씀에 보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Faisons-le en gardant les regards sur Jésus)” 라는 말씀과 함께,  12장 3-5절 말씀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Pensez en effet à celui qui a supporté une telle opposition contre lui de la part des pécheurs, afin de ne pas vous laisser abattre par le découragement. Vous n'avez pas encore résisté jusqu'au sang dans votre combat contre le péché et vous avez oublié l'encouragement qui vous est adressé comme à des fils:”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책망의 말씀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격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 까지 소극적으로 저항하지 말고 좀더 적극적으로, ‘피 흘리듯’ 격렬하게 죄와 싸워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실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과거에 그분을 거역할 때도 그 모든 일을 참고 기다려 주셨고, 지금도 우리가 스스로 힘을 내어 모든 죄와 싸워 이기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지 맙시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혹여나 세상이 우리를 위협해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를 유혹할 때,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맙시다.   

 

늘 하나님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머무르심으로, 세상의 모든 죄와 유혹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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