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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때

2018.02.12 15:49 조회 수 : 2

설교일 2018-02-04 
성경본문 사도행전 14:19-28 
설교자 최성묵 목사 

사도행전 14:19-28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실 때

 

1. 서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마음 속에 모셔 들인 다음에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우리 자신의 진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하지요. 그동안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를 가지고 살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동안 몰랐던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인지 알게 되고, 세상을 더 당당하게, 담대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의 마음으로 자녀를 바라보듯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이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2. 본론

 

오늘 성경에 등장하는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자신의 그런 과거를 생각하며, 여전히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쁜 소식을 전해 주는 일에 온 힘을 다 기울였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사울이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안디옥에 있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다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의 뜻에 따라 선교를 위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게 되고,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이후부터는 주로 바울의 선교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13, 14장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조금만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파송을 받은 두 사람은 여러 지역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선 이들은 회당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납니다. 회당은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유대인들이 예배를 어떤 식으로 드리는지 일부분 소개가 되어 있는데, 회당장이 구약 성경의 모세의 율법과 선지서 들을 낭독한 후에 랍비 중 한 사람이 나와서 강론을 합니다. 혹 외부에서 온 랍비가 있다면 그에게 부탁하여 강론을 듣습니다. 회당장은 사도 바울을 알아봤던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 가말리엘이라는 대학자 밑에서 공부한 석학 랍비였기 때문에 그에게 부탁합니다. “형제님들, 만일 백성들에게 권할 말씀이 있으시면 한 마디 부탁합니다”

 

그러자 바울이 나가서 그들에게 구약에서부터 시작하여 시작하여 예수님을 증거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듣고 나서는 다음 주에도 다시 말씀을 전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다음 주 안식일에 보니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그 도시 온 시민들이 거의 다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말씀을 잘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믿음을 갖지 못한 유대인들이 화가 나서 경건한 귀부인들과 시내의 유지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쫒아 내 버렸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 마을을 벗어나면서 발의 먼지를 털고 이고니온이라는 지역으로 떠납니다.

 

이고니온 이라는 지역에 갔을 때,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자 거기 참석했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해서 함께 유대교 회당에 들어와 있던 많은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러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유대인들이 그 지역 사람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가 나쁜 사람들인 것처럼 말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악한 감정을 가지게 되지요.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더욱 주님을 의지합니다. 오랫동안 그 곳에 머무르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마음을 담대히 먹고 예수님을 전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살펴보면 이들이 전했던 것은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 얼마나 좋은 분이신지, 그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는지, 예수님은 죽음이 가둬 둘 수 없는 분이시기에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가 되셨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전할 때마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3절부터 볼까요?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표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시라는 뜻입니다. 기사는 무엇입니까?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만 가능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이들의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의 말이라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준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주님의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신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자신이시지요?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살아가시는 동안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그냥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시고,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언제나 우리에게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들의 말과 여러 가지 표적들을 보니 그 말씀이 하나도 거짓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말을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결국 사도들을 돌로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죽을 위기를 피하기 위해 그 곳을 도망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죽을 위기를 겪고 나면, ‘아이고 더 이상 못하겠네’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나요? 다른 지역으로 또 이동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루스드라 라는 도시로 다시 이동하여 또 복음을 전하다 보니, 여기에는 발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이어서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곳에 빠지지 않고 계속 나와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태도를 보니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고 있어요.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바울의 눈에 보였습니다.

 

바울이 이것을 보고 큰 소리로 말합니다. “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랬더니 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된 것입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요?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어찌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제우스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분명해! ’라고 생각했지요. 거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최고의 신은 제우스라고 들어왔던 생각이 난 것이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씀에 은혜 받고 귀 기울여 듣던 사람들이 갑자기 야단이 났습니다. 벌떡 일어나 제우스 신전으로 달려갑니다.  갑자기 신전의 사제(제사장)들을 부르고 난리가 났어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를 끌고 오고, 꽃다발을 만들어 오고 난리가 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머무르는 집 앞에 와서, 제삿상을 차려 놓고 제사를 하려고 사람들이 다 모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이 광경을 보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당장에 뛰어 나가서 옷을 찟으면서 소리를 치며 만류를 합니다. “ 여러분, 왜들 이러세요? 저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신이 아니에요 ” 그리고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 우리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이런 헛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을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 뿐입니다”
라고 소리를 칩니다. 우리 성경을 직접 읽어 볼까요? 15절을 볼까요?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이 말씀 속에는 바울이 왜 그렇게 힘들게,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서 이방인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이 저희를 이렇게 과분하게 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한 마디라도 말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었습니다. 오직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릴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은 그저 하나님의 심부름꾼일 뿐임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진정하도록 합니다. 참 겸손하지요?

 

그런데 이때 바울이 거쳐온 지역의 사람들(안디옥, 이고니온)이 또 따라와서 또 사람들을 충동 합니다. 바울을 모함하고 선동합니다. 그러자 수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돌을 들기 시작하더니 바울을 공격하여 죽을 지경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 만큼 큰 상처를 입습니다. 바울이 쓰러져 있자 죽은 줄로 알고 도시 외곽에 끌어다가 내다 버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둘러 서서 보고 있을 때, 다행히 바울의 의식이 되돌아 왔습니다. 바울을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갑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 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더베라는 다른 성으로 들어가서 또 복음을 전합니다. 그 성하지 않은 몸으로… 그리고, 그 성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다시 루스드라로, 이고니온으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그가 박해 받고 쫒겨 났던 바로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 또 복음을 전합니다. 그의 열정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 우리에게 믿음의 문을 여실 때, 우리에게 복음의 문을 여실 때

 

모든 선교지를 돌아온 바울은 처음 출발지였던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교회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전하여 주며 그들을 격려하고 ‘고난 받아야 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의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7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비울이 말 한 것을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요, 하나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였습니다.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였는지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하여 하신 일들을 고백했습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미 우리가 살펴본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지만, 각 성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기쁨으로 복음을 믿고, 삶이 치유되고, 변화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거부하고 사람들을 선동하거나 충동 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하실 때, 마음을 활짝 열고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으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마음을 열고 있습니까?

 

(2) 우리가 꿈꾸는 선교

 

그런데 또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처럼 우리를 통하여 문을 열기 원하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를 꿈꾸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지금 선교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가까운 지역에 있는 아프리카 선교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렇게 일 회적인 행사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닥 생각합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작년 선교의 해로 정하고 노력했지만, 저는 아직도 저희 교회가 어떤 일을 통하여 선교를 해야 할 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를 위해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아프리카의 브루키나 파소(Burkina Faso)에서 선교를 하시던 정세경 선교사님께서 잠시 우리 교회를 다녀가셨는데, 치약이나 칫솔 하나 가지고도 선교를 할 수 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부르키나 파소에도 그런 낙후된 지역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지역에 가 보면 치솔이 없어서 나무 막대기로 이빨을 닦는답니다. 잇몸이 다 상하고 각종 병균으로 입이 엉망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치약 하나 만을 사 줘도 전도가 된답니다. 치약이나 치솔을 사주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치약이나 치솔 하나의 가격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가 치약이나 칫솔 하나를 사는데 부담이 됩니까? 사실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여러분 중에 잘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저희 교회는 선교사님의 말씀을 듣고 브루키나 파소에 치약을 사 보내는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사역을 계속 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다 함께 조금씩 헌금을 하여 이 사역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직접 방문하여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3.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을 열어 주실 때, 우리는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믿음의 문을 열어야 할 사람으로 부르신 것은 아닐까? 우리를 통하여 문을 열기 원하신다면, 우리는 그 일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이 멀리 있든지 가까이 우리 옆에 있든지 그들을 위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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