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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세상과의 충돌

2018.01.22 01:35 조회 수 : 7

설교일 2018-01-14 
성경본문 사도행전 4장 19-21 
설교자 최성묵 목사 

사도행전 4: 19-21 세상과의 충돌

   
1. 서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이 세상에서 상식처럼 통용되는 사상이나 가치관과 엄청나게 충돌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질 만능 주의, 상대 주의, 탈 권위 주의, 자유 주의, 성공 주의, 약육 강식과 적자 생존의 원리 등이 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움직여 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기독교적인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어도 아주 먼 것들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문화와 가치관들이 이 사회와 인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영원하지 않은 원리입니다. 그럴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를 썩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들고,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함께 멸망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는 가치관들’ 입니다. 어느 것 하나 인격을 소중히 여기거나, 정의를 바로 세우거나 희생과 섬김 같은 성경적 사랑의 정신이 아닙니다.

 

이런 정신과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어느 사이에, 예수님의 복음도 성공과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수단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큰 교회에 나가면 큰 신앙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 교회를 손가락질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교회를 찾아다닙니다.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이 쓴 책 “ 카운터컬처 -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라는 책에서는 낙태의 문제, 과아와 과부의 문제, 성윤리와 결혼관  이런 내용을 다루어 주면서, 복음은 결코 세상의 가치관과 같지 않고 교회 또한 세상과 다른 곳이라고 소개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정신을 따르는 곳이 아니라 세상의 정신을 극복하고 그런 병든 사회를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인간의 마음을 고치고 새 사람으로 변화 시켜 세상을 변화 시키고, 생기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뒤를 따라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오늘 말씀 역시 당시의 시대 속에서 강한 출돌을 경험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2. 본론

 

(1) 40세 된 소아마비 환자를 고친 베드로와 요한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이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리는 데 모든 힘을 다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특히 사도들은 자신들의 모든 일들을 다 내려놓고 이 일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부활하셨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 안에 죽는 사람은 그 사람도 역시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 그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사도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성전에서도 길에서도, 집에서도 다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3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걸음을 걷지 못하던 사람이 나아서 걷고 뛰게 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을 고쳐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이었습니다. 길거리에 앉아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다가간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행 3:6)

 

그리고 나서 손을 잡고 일으켜 주니 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달리기도 해 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닙니다. 온 몸이 완전히 나아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날 때부터 장애인이 되어 40여 세가 되도록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온 사람을 단 한 번에 고쳐준 사실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서 베드로에게 모여 들었습니다. 이 때, 베드로가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십니까? 이 사람은 제가 고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니, 그 ‘예수님의 이름’이 이 사람을 고친 것입니다. ”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사람의 숫자를 헤아릴 때, 남자의 숫자만 세는 것이 관례였는데,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다고 하니 여자와 아이들의 숫자를 포함 시키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2) 반대자들 앞에서 담대하게 설교하는 베드로
그런데 이 일로 인하여 큰 충돌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일들을 누가 싫어 했을까요? 당시에 성전과 관련된 사람들이지요. 성전에 있던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 과거 다윗왕 시대에 제사장이었던 ‘사독’이라는 제사장의 후손인 사두개인들이 성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웅성거리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인가 하고 왔다가 베드로의 설교와 사람들의 반응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너무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관리들과 나이가 많은 원로들과 서기관들을 예루살렘에 모이게 합니다. 대제사장과 대제사장의 가문 사람들이 다 모여서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또 다시 질문을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다시는 이런 일들을 하느냐 ?”
그러자 베드로가 차분히 일어나서 말을 시작합니다. 8절 부터 12절까지를 함께 볼까요?

 

8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얼마나 간단 명료한, 확실한 설교입니까? 베드로는 앞에 선 사람이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복음이신 예수님을 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진 사람입니다. 함께 음식도 먹고, 함께 기도도 하고, 함께 잠도 잤습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실때 그 말씀도 다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보았고 예수님의 부활도 보았습니다. 때로는 두려워서 도망도 친 적이 있었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지켜보고 나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도하는 주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나서 보니 더이상 세상에 두려운 것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어부에 지나지 않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가 담대히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정황상 비난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의논을 한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를 합니다. 참 무기력한 모습이지요.

 

그러나 베드는 뭐라고 답변을 합니까? 19절 말씀,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여러분 이 담대한 모습에 그들은 기가 죽어 버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 거기서 위협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좋은 결정입니까? 그들이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능력 있는 복음이었습니다. 40년 된 병자도 고치는 능력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생을 전해주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 그것을 포기하고 저 사람들, 복음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들, 세상의 가치관으로 가득 채워진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그들은 담대했습니다. 설령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해도 그들은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이것은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역시 비슷한 말들을 여러 차례 하였습니다.

갈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갈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4) 우리의 싸움의 외로운 싸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결심하고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업하는 사장님들이 많은 곳에 가면 큰 회사를 운영하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더 우대를 받습니다. 조그만 사업을 하는 사람은 명함도 내밀기 어려울 수 있지요. 요즘 어떤 영화를 보고 나오면 ‘애인 없는 사람은 부끄러운 것인가?’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심지어 결혼한 사람 조차도 애인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어쩌다 우연히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것이 진짜 부끄러운 것일까요? 교회에 다니며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사람이 어리석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처럼 여겨지는 모임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외로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베드로 후서 3장을 함께 볼까요? 3장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그럼, 8절과 9절에서는 뭐라고 말씀합니까?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과 충돌하십시오.
복음으로 무장하고 세상과 충돌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십시오.
베드로처럼 선포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예수님의 사람입니다. 그 이름으로 담대하게 세상과 충돌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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