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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사랑의 왕 2-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

2017.12.11 23:39 조회 수 : 11

설교일 2017-12-10 
성경본문 이사야 42장 1 - 4 
설교자 최성묵 목사 

이사야 42장 1 - 4 / 사랑의 왕 2-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

 

    1. 서론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때부터 선지자로 활동하여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왕이 통치하던 시대까지 오랜 기간동안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던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역사적인 실제 연도로 추적해 보면, 그가 기록한 이사야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739년에서 680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오래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이사야의 눈에는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고난과 죽음, 그가 예언해 놓은 예수님의 모습은 소름이 끼치도록 자세하고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게다가 신약 성경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해 보여 줍니다. 700여 년의 시간의 간격이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모습을 기록한 마태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

 

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와서 성취 되었다고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이 그 본문이 그렇습니다. 우리 마태복음을 한 번 찾아 보실까요? 마태복음 12장 19-20절 말씀입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
 Il ne contestera pas, il ne criera pas, et personne n'entendra sa voix dans les rues. Il ne cassera pas le roseau abîmé et n'éteindra pas la mèche qui fume encore, jusqu'à ce qu'il ait fait triompher la justice.

 

2천년 전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은 평범한 아기가 아니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의 위로자요 구원자이셨습니다. 그 분의 사랑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문장 중의 하나가 오늘 말씀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을 중심으로 사랑의 왕이신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2. 본 론

 

        1. 상한 갈대,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인생

 

혹시 여러분 중에 갈대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갈대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집을 지을 때 기둥으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가구를 만들 때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갈대는 아주 적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조금만 힘을 주어도 꺾어지기 쉽습니다.

 

갈대는 종종 연약한 인생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표현입니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에서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인간의 육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바이러스와 세균에도 목숨을 잃곤 합니다.

 

지난 주에 그동안 암으로 투병하던 조니 할리데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랑스의 앨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리는, 프랑스인들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유명한 뮤지션이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 와서 조사를 읽고, 전직 대통령 2명이 장례식에 참석할 만큼 프랑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를 치료하던 의사는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다고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돈이 없어서 세상을 떠났을까요? 주변에 훌륭한 의사가 없어서 세상을 떠났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연약한 갈대와 같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과 같습니다. 기름통에 담긴 기름이 다 떨어지면 조용히 꺼져 버리는 등잔불 같이 인생은 한 없이 약하디 약한 존재입니다.

 

        2. 연약한 인생을 찾아오신 예수님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상한 갈대와 같은 우리들을 쓸모없다고 내버리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한 갈대의 상처를 싸매시고 치료하십니다. 세상에서 무시 당하고 버려진 인생을 받아주시고 치료하셔서 귀한 보석같이 사용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을리고 다 타버려 더 이상 빛을 내지 못하는 등잔 같은 우리들을 내버리시는 게 아니라, 새롭게 고쳐서, 거기에 성령의 기름을 부으셔서 우리를 세상의 빛으로 빛나게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현장에서 잡힌 한 여자를 만나셨습니다(요한복음 8장 2-12).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실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불륜을 저지르던 중에 붙잡힌 한 여자를 끌고 와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세우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말하였는데, 선생은 어떻게 말하시겠습니까? ”


사람들은 다 손에 돌을 들고 그녀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을 함정에 몰아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몸을 굽히시더니 손가락으로 땅에 뭐라고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왜, 할 말이 없으신가요? 빨리 뭐라고 답변해 보세요? ”하면서 사람들은 계속 예수님을 추궁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말씀하십니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Que celui d'entre vous qui est sans péché jette le premier la pierre contre elle. ”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는 말씀은 ‘먼저 너희 자신이 죄가 없는지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라 !’는 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 앞에서 진짜로 죄가 하나도 없느냐? 너는 그 사람을 비난하고, 죽일 만큼 네 자신이 깨끗하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들키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 명 두 명, 어른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다 슬금슬금 그 자리를 피해 떠나가 버립니다.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이제 오직 예수님과 그 가운데 섰던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Femme, où sont ceux qui t'accusaient? Personne ne t'a donc condamnée? ”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자의 문제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그 여자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 그를 끌고 왔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는 자기를 여기까지 끌어온 그 사람들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죽이려 하던 사람들입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나의 나쁜 행동이 발각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제 저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아야 할까?’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자기를 죽이려 하던 사람들 생각을 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사치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도 인터넷 악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 뉴스가 자주 들려오곤 합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들의 비난에 견디지 못하는 것이지요. 비록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재미 삼아 자기 생각을 토해 낸 것인데, 그들의 악성 댓글을 보면서 당사자는 죽음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려분 중에도 혹시 그런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었던 분이 계십니까? 그런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아마도 그녀의 심정을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사실을 잘 아셨던 것이지요. 상한 갈대 같은 그녀에게,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그녀에게 던지신 예수님의 질문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Femme, où sont ceux qui t'accusaient? Personne ne t'a donc condamnée? ”

 

‘너를 고발하고 정죄하던 그 모든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너와 같은 죄인이란다.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라!’라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녀를 보호하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Moi non plus, je ne te condamne pas; vas-y et désormais ne pèche plus. ”

 

예수님께서도 그를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괜찮아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그건 죄가 아니야!’ 이런 걸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용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 여자 대신에 이 여자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이제 십자가를 지셔야 합니다. 이 여자 때문에 죽으셔야 할 예수님 조차도 이 여자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데, 누가 그 여자를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여자의 가장 연악한 부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보호하시고 격려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우리는 이 모습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왜 입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33-34절 말씀에,

 

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Qui accusera ceux que Dieu a choisis? C'est Dieu qui les déclare justes! Qui les condamnera? Jésus-Christ est mort, bien plus, il est ressuscité, il est à la droite de Dieu et il intercède pour nous!

 

성경은 그 여자와 우리를 떼어 놓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돌을 들었던 사람들이나 그 여자나 우리나, 모두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지만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그 모두를 위해, 모두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예수님께로 나아 온 사람들은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은 쓰레기 같은 인간이니 필요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을 받던 세리와도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창녀도 강도도 내쫓거나 버리지 않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 특권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저주 받았다고 생각하고 가까이 하기 싫어하던 나병 환자나 혈루병 환자나 지체 장애인들도, 예수님께서는 더럽다고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깨끗이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배운 것도 없고, 고상한 가문이나 권력이나 재물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셨습니다.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교회의 기초가 되게 하셨습니다.
               
        3. 드러내지 않는 사랑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의 모습은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드러내지 않으시는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사야 42장 2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Il ne criera pas, il ne haussera pas le ton et ne fera pas entendre sa voix dans les rues. ”

 

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외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비난에도 휩쓸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조용히 자기의 길을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에게 소문 내는 것도 극도로 금지하셨습니다. 그저 조용히 하실 일에만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1장 29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29 Acceptez mes exigences et laissez-vous instruire par moi, car je suis doux et humble de coeur, et vous trouverez le repos pour votre âme.

 

    3.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성탄절이 점점 다가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이 아름다운 사랑을 배워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과 같은 그런 사랑으로 한 번 섬겨 볼 수 있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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