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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사랑의 왕 1- 사랑하기 위하여 오신 주

2017.12.11 23:16 조회 수 : 13

설교일 2017-12-03 
성경본문 요한 1서 4장 7-11 
설교자 최성묵 목사 

사랑의 왕 1- 사랑하기 위하여 오신 주님 / 요한 1서 4장 7-11절

 

    1. 서론


직장 생활을 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회사의 사장님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회사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떤 회사는 직원들은 일은 엄청 힘든데 아무도 회사를 그만 두려고 하지 않아요. 어떤 회사는 일은 별로 없고 힘들지도 않은데 직원들이 틈만 나면 다른 회사를 알아봅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면 회사 분위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고 사원들을 사랑하는 분이시면 직원들은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갑니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그 나라의 분위기도 달라집니다.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왕이 있는 나라는 왕이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던 시간 동안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복음서에는 주제가 있습니다. 마가 복음은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 누가 복음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지만 또한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합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온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자신이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마태 복음은 예수님을 혈통이 확실한 왕으로 오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오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려 주시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요즘은 왕이란 표현은 꼭 통치자로서의 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어느 분야에 최고인 사람을 말할 때도 ‘왕’이라고 부르더군요.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노래를 가장 잘하는 사람을 ‘가왕’이라 부릅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의 왕’이란 , 스포츠의 금메달리스트,  그 분야에 있어서는 최고로 잘하는 사람… 그런데, 그렇게 봐도 예수님은 왕이신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왕이신가요? 섬김의 왕, 겸손의 왕, 자비의 왕, 사랑의 왕으로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9-10절,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Voici comment l'amour de Dieu s'est manifesté envers nous: Dieu a envoyé son Fils unique dans le monde afin que par lui nous ayons la vie. Et cet amour consiste non pas dans le fait que nous, nous avons aimé Dieu, mais dans le fait que lui nous a aimés et a envoyé son Fils comme victime expiatoire pour nos péchés.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이지요.
이번 성탄절 주제를, ‘사랑의 왕 예수’라고 정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어떤 사랑의 예수님이셨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론
       
        1.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랑하기 위해, 사랑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온전하고 거룩하고 완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에 임한 것입니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갈등하고 고통 하는 인생들에게 참 사랑이 무엇인 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예수님의 삶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C'est ainsi que le Fils de l'homme est venu, non pour être servi, mais pour servir et donner sa vie en rançon pour beaucoup.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고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주님으로서, 선생님으로서 너희의 발을 씻겨 준 것을 생각하고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2.  예수님은 용서에 대한 최고의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한 최고의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에 대한 말씀은 유명하지요? 한 번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를 해 주어야 할까요? 일곱 번 정도까지는 용서해 주어야 하겠지요?”


베드로가 일곱 번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루에 일곱 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 피해를 주거나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산을 해 보면 490번이지요. 그러나 이 수는 단지 많다는 의미 외에 수를 세지 말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주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우리가, ‘너, 이번이 여섯 번째야 ! 이제 한 번만 더 하면 나도 못 참아. 그 때는 핵폭탄을 날려 버릴 거야!’ 이러면서 우리에게 상처를 준 그 회수를 계산하고 있는 다면, 그것을 진정한 용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없겠지요. 우리가 용서해 준 횟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우리 안에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그 수효가 채워질 때 복수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많은 상처를 받는다 해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 상처 받은 것에 대해 너그럽게 봐 주는 것 즉 용서하며 잊어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많은 군중들이 십자가 밑에 와서 예수님을 조롱하고 침 뱉았지요.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 내가 너희들을 위해 죽어 주는데, 고작 한다는 것이 그거냐? 이 못된 녀석들, 은혜도 모르는 나쁜 녀석들아! ” 이러셨나요? 아닙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나와 있는데요,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

Jésus dit: Père, pardonne-leur, car ils ne savent pas ce qu'ils font.


당신의 죽음의 상황 속에서도, 그를 죽음의 궁지로 몰아 넣고 조롱하는 그들을 비난하시기는 커녕, 그들의 무지함을 이해하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이것이 진짜 용서입니다. 예수님의 용서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용서의 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도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Mais moi je vous dis: Aimez vos ennemis, bénissez ceux qui vous maudissent, faites du bien à ceux qui vous détestent et priez pour ceux qui vous maltraitent et qui vous persécutent,


예수님은 겉옷을 내 놓으라고 요구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29-30절 말씀에,


29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
29 Si quelqu'un te frappe sur une joue, présente-lui aussi l'autre. Si quelqu'un prend ton manteau, ne l'empêche pas de prendre encore ta chemise. Donne à toute personne qui t’adresse une demande et ne réclame pas ton bien à celui qui s'en empare.

 

사람들이 기독교에 실망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잘 하셨는데,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께서 쓰신 ‘토비아스의 우물’이라는 이야기가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사막 한 가운데 마을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막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면 제일 걱정인 것이 물이겠죠. 사막에는 물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 값이 그 어떤 값보다 더 비싸지요.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은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물을 가진 우물 주인 토비아스가 물을 거저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토비아스는 아들과 함께 먼 길을 떠나며 하인에게 ‘누구에게든지 아무 조건 없이 물을 공짜로 나누어 주라’며 우물 관리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하인은 모든 사람에게 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맙다는 말도 안 해요. 어떤 사람은 고맙기는 커녕 물 맛이 어떻네 하면서 불평하거나 비난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인은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자기에게 잘 보이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었습니다. 주민들은 하인의 눈 밖에 나지 않아야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하인에게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가에 주인의 아들이 나타납니다. 그는 하인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예전처럼 마음껏 물을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주민들은 큰 안도의 한 숨을 쉽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마음껏 물을 가져다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생각해 보니 그 하인이 그동안 한 행동이 괘씸한 것입니다. 자기가 우물의 주인도 아닌 것이 주인보다도 더 나쁜 짓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아들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동안 주인의 말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을 힘들게 했던 하인에게 다시는 물을 주지 말아 달라고. 그렇지만 아들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하인에게도 물을 주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그러면서 그 종을 용서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의 차이점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우리의 삶의 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우리 때문에!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는 사랑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 말씀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C'est ainsi que le Fils de l'homme est venu, non pour être servi, mais pour servir et donner sa vie en rançon pour beaucoup. ”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신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러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조차도 희생하여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셨습니다. 죄인인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그들이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시려고, 세상에 군림하고 있는 악의 세력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축복된 하나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죄수를 처참하게 죽이는 흉칙하기 짝이 없는 사형틀이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아니고는 우리는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로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저에 대하여 실망하고 좌절이 될 때,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롬 5장 8절 말씀인데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Mais voici comment Dieu prouve son amour envers nous: alors que nous étions encore des pécheurs, Christ est mort pour nous.


‘맞아,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더 나쁜 놈이었지! 그런 나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셨는데, 그래도 그 때보단 낫잖아?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 돼지. 다시 일어나자!’ 그러면서 일어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자기를 죽음에 내어 주실 만큼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지금 상황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 받는데 머무르지 않고, 예수님과 같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도 그런 사랑을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Il n'y a pas de plus grand amour que de donner votre vie pour vos amis. Vous êtes mes amis si vous faites ce que je vous commande


사랑하는 친구 사이에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역시 강요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친구의 자리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3.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오신 분이십니다.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배신해도 기다려 주시고, 심지어 우리가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우리의 마음에 찾아와 마음의 상처를 위로해 주십니다.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 내가 너를 사랑 하노라! ”라고 선포하십니다. 친구가 되자고 말씀하십니다. 감히 우리가 친구 하자고 말씀 드릴 수도 없는 분께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겠다고 속삭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그 넓이를 우리도 알아갑시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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