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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설교일 2017-11-12 
성경본문 누가복음 10장 17-24 
설교자 최성묵 목사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 누가복음 10장 17-24  


    1. 서론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을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 땅에 부르신 ‘여러분의 사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물질의 풍요나 권력에 관심이 없었고 음식에도 전혀 탐욕이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과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습니다.

 

그런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이 땅에 오시는 만 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잘못을 깨닫게 가르치고, 그들을 회개 시키면서 그들에게 기쁜 소식 하나를 전해 주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구주로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틈만 나면, 기회가 되면 언제나 이렇게 말합니다.

 

"화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가 이렇게 외친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사명을 위해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지요.

여러분도 이렇게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해 사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본론


        (1) 성경 말씀의 배경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이 시작되는 누가복음 10장 처음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당신께서 방문하시려는 마을들에 미리 70명의 사람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70명의 사람들이 했던 일들은 병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방문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70명의 사람들이 환자들을 고쳐 준 다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주셨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는 내용이었습니다(눅10:9).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던 내용과 같은 말이지요?

 

그들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의술을 가르쳐 주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런 능력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다음부터 자신들에게 신비로운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떤 병자를 만나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몸이 아프든 마음에 병이 있든 상관 없이 그냥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눈을 떠라!’ 그러면 눈을 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일어나서 걸어라!’ 라고 말하면 태어나서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장애인들이 벌떡 일어나서 처음부터 정상인이었던 것처럼 걷거나 뛰거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병이 떠나갈 것을 말하기만 하면 모든 병이 치료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귀신 들린 사람의 치유였습니다. 영적인 병에 걸린 사람은 아무리 의사가 치료해도 치료 되지 않습니다. 귀신이 나가야 치료가 되는 것이지요. 요즘 사람들은 ‘귀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성경은 분명히 귀신의 존재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귀신의 세력은 사람들의 불행의 근원이 됩니다. 그래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을 만나면 귀신을 쫒아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이 귀신이 갑자기 나에게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도 갖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 말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귀신들이 귀신들은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먼저 알아보고 도망치거나 무릎을 꿇고 벌벌 떨면서 항복을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생각할 때 이것이 너무 너무 신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70명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한 말은 이들의 분위기를 충분히 대변해 줍니다. 그들의 얼굴은 흥분된 모습이었습니다. 17절 말씀을 보면,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7)

 

자기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너무 신기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을로 갈 때까지만 해도 ‘이게 가능할까?’ 생각했었는데, 자기들 눈 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에 자기들이 놀란 것이죠. (여러분, 우리 역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귀신도 물러갈 줄 믿습니다 !)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

 

예수님께서 이미 그것이 어떤 상황 이었는 지를 다 알고 계셨다는 것이지요? 7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지역을 순회하고 있었을 때 사실 그 지역에서는,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면서, 빛의 왕 예수님의 이름과 어둠의 왕 사탄의 치열한 전쟁이 있었고, 귀신의 세계를 다스리던 귀신들의 왕 사탄의 몰락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18-19절 말씀을 보실까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제자들이 가졌던 그 능력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셨던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죠. 그리고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그들을 막거나 해칠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도 말씀해 주십니다.    

 

여기서 원수란 귀신의 왕 사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든 귀신들을 거느리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두렵게 하고, 병들게 하는 원수 마귀의 어떤 능력도 하나님의 자녀는 해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 역시 그런 사람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자녀의 능력, 예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의 어떤 능력도 막을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입니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 인들이 잘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능력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그런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큰 능력도 주십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과 원수 같은 사람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능력일까?’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귀신의 능력을 제압하는 것보다도, 그 능력에 사로잡힌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그를 위해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와 같은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마치 집 나간 아들 같은 우리를 불러, 예수님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왜 저를 이렇게 사랑하세요? 제가 그런 사랑 받을 자격이 있나요? ”
한때 복음성가 중에 “왜 날 사랑하나”라는 곳이 많이 불린 적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곡을 많이 불렀었죠.
“ …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 했나, 왜 날 사랑하나? ”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그래 넌 충분한 자격이 있어. 넌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니까! 그래서 너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거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아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세상의 어떤 능력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가 기뻐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다음 구절의 말씀을 더 유심히 읽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좀 재미있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저글링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신호등이 바뀌어 차가 설 때마다 차 앞에 서서 저글링을 하면서 돈을 법니다. 대회에 나갈 만큼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돈을 버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엄청 멋져 보이는 차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때는 이때다 생각하며 열심히 그 쪽을 힐끗 힐끗 보면서 저글링을 했는데, 기대했던 대로 그 차 운전하시는 분이 돈을 엄청 많이 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돈과 함께 명함을 내 놓으면서 꼭 전화를 해 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분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분의 집은 넓은 정원이 있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큰 집이었습니다. 그 분은 차도 엄청 비싸고 근사한 차도 여러 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집에서 근사한 식사 대접을 받으면서 속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아, 나도 그런 좋은 집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차도 한 번 만이라도 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런 집을 살 돈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차를 살 돈도 없습니다. 내가 지금하는 저글링으로는 평생 벌어도 살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설령 그 차를 준다고 해도 난 아직 운전 면허증도 없어서 운전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 주인이 음식을 먹다 말고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오늘 내가 당신을 초대한 것은 내가 이 집과 이 차를 당신에게 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습니다’라고 ! ‘이미 집 주인 이름을 당신 이름으로 다 변경해 놓았다’고, ‘우리집 차는 운전수가 딸려 있어서 운전할 일이 없을 거라고!’ 그렇게 말해 줍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제안을 받는 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여러분 마음 속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이 분이 나의 뭘 보고 나에게 이런 호의를 베푸는 것일까? 날 언제 봤다고 그러지? 내가 저글링을 그렇게 잘했나? 확실히 그건 아닐 텐데! 그럼 왜 그럴까? 혹시 이 분이 나를 이용해서 뭘 하려고 하나? 혹시 인신 매매범? ”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겠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요.

 

제자들에게 있어서는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이 엄청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고, 또 한 편으로는 재미있는 일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을 즐기라고 주신 것이 아니지요. 그런 능력은 우리가 보기에는 기적이지만 예수님에게는 기적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일이지요.

 

“...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눅10:20)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어떤 능력 보다도, 하나님의 자녀 됨, 그래서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고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은 나를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신 나의 주님이십니다 ! ”라고 고백하는 순간, 사실은 우리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어떤 저택보다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집이 하나님의 나라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 거주권은 이미 우리에게 다 이전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절에 보면 그 집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3)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

 

그런데 21절 말씀에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기도를 보면 이것이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 볼까요?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 (눅10:21)


자 이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숨겨진 진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들입니다.

 

오늘 날 순수한 기독교를 비판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세상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어찌  2천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준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노력 없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선행이 없이는 구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다양한 종교가 있는데 우리의 구원이 어찌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어진다고 말합니까? 기독교는 너무 독선이 심합니다! 성경은 너무 오래된 책으로 당시의 문화 사회 역사적 테두리 안에서 쓰여졌으므로 오늘날에는 폐기되어야 합니다. 2천 년 전에 내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의 구원에 대하여 알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이렇게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논의들은 점점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져 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로 성경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판단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분들 중에도 이런 생각에 동조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기독교 역사는 결코 그런 논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역사성도 없고 진실성도 없는 허구이기 때문입니다.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설들에 불과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변함 없고 진실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기준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를 여전히 붙잡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고 경험한 사람들이 교회를 세웠고, 그 교회가 오늘까지 같은 고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예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결론 :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라보았던 분을 우리도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을 오늘 우리도 경험합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시고, 우리의 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과거에 수 많은 경건한 선지자와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들도 우리가 지금 보는 바를 보고 싶어 했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보고 있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거짓이 진리인 것처럼 판을 치는 믿을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끝까지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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