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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내 안의 종교개혁

2017.10.31 22:59 조회 수 : 10

설교일 2017-10-29 
성경본문 로마서 1장 16-17 
설교자 최성묵 목사 

로마서 1장 16-17 / 내 안의 종교개혁 

    1. 서론
저는 지난 수련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몽펠리에가 개신교 역사상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대하여 한 시간 동안 아주 간략하게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촬영해 둔 동영상이 편집되는 대로 교회 홈페이지에 올려 놓을 생각입니다만, 긴 프랑스의 개신교 역사, 나아가서는 유럽의 신, 구교를 포함한 모든 기독교 역사를 한 시간에 다 말씀드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좀 더 공부를 해서 여러분과 나누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고 싶고, 가능하다면 다 같이 사막 박물관(Musée du désert)에도 가서 견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가 구교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는 시작점이 되었던, 종교개혁 주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지금부터 5백년 전,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 가톨릭 교회의 신부였고,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M. Luther)가 자신의 신앙과 학자로서의 양심으로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고 이것의 개혁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95개 조항으로 된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촉발된 종교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교회들은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 개혁 주일로 지키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것에 대하여 잠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2. 본론

        1. 루터의 종교 개혁의 계기


루터가 이렇게 종교개혁을 시도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16세기의  교회와 교황청, 특히 교황들의 도덕적 타락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신부가 되면 결혼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교황은 결혼은 못하지만 자녀는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교회의 도덕적 타락의 정도를 가늠하게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Alexander) 6세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교황이 그랬으니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도덕적 해이함은 어땠겠습니까?


게다가, 루터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100년 동안 끌어오던 베드로 성당의 완공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1506년부터 면벌부 판매를 다시 시작합니다. 면벌부를 사는 사람은 즉시 죄의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연옥에 가 있는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고모를 위해 면벌부를 사면, 그 돈이 헌금함에 ‘땡그랑’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곧 천국으로 올라가게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면벌부가 잘 팔리게 하려면 누군가 중간에 이익을 얻는 사람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생각으로 수익금의 반은 지방 감독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학자이면서, 대중 연설을 잘 하는 테젤(Textile)이라는 신부를 시켜서 사람들을 설득하게 했습니다. “지금 지옥에서 고통 당하는 여러분의 어머니의 신음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2003년에 나온  “ luther”라는 영화를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루터는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가르치던 교수요, 성경학자로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완전히 성경을 외면한 잘못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항목으로 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지 않겠는냐는 질문지를 붙이고 누구든지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사실, 루터는 개신교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부패한 교회가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하여 토론을 제안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황과 황제는 한 편이 되어서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해 버리고 성직을 박탈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부패로 인하여 고통 받던 농민들이 들고 일어서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번져 버리고 맙니다. 지방 영주들이 루터의 편을 들고 황제와 대립했습니다. 사태는 점점 더 커지고, 마치 화약통에 성냥불을 그어 댄 것처럼 유럽 전 지역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2. 루터의 종교 개혁의 핵심


종교개혁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핵심은 ‘인간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학과 교회의 영역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변화 속에 “사람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어도 착한 일을 많이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바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불로 고통을 받으며 죄를 다 태워버린 후에야 비로써 천국에 들어간다고 가르쳤습니다.


여러분이 중세 시대의 성당을 방문할 때, 많은 성당들이 성당 전면에 최후의 심판이 부조로 새겨진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왜 성경의 많은 내용 중에 그것을 새겨두었을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해서 교회의 가르침에 무조건 따르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연옥의 두려움 때문에 선행을 해야 하는 신앙 속에서 신부님의 말을 들으면 면벌부는 가장 확실한 해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성경을 읽다가 오늘 우리가 읽었던 말씀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6 En effet, je n'ai pas honte de l'Evangile [de Christ]: c'est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tout homme qui croit, du Juif d'abord, mais aussi du non-Juif. 17 En effet, c'est l'Evangile qui révèle la justice de Dieu par la foi et pour la foi, comme cela est écrit: Le juste vivra par la foi.


복음이 왜 복음입니까? 누구든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기 때문에 복음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높은 신분이든 낮고 천한 신분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교황이든 신부이든 그런 직책이 아니라 할 지라도 누구든지, 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성경에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Le juste vivra par la foi.” 라고 되어 있습니다. 루터는 부패한 교황의 말이 아닌 이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이 말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흐르는 복음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율법을 다 지켜야만 하고 , 그래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율법을 지키려 하면 할 수록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우리가 따라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이것을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루터가 주장했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신앙과 삶의 표준은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세기 당시 성경은 교황의 교시와 전통, 그리고 교회제도가 성경 위에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교황의 말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므로 교황은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이 당시의 신앙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주종의 관계가 뒤바뀐 것이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위치와 권위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된다는 것이 루터 개혁의 첫 번째 정신이었습니다. 루터는 "나의 신앙은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에 사로잡힌 포로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만이 하나님과 신앙 문제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고전4:6에 보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이 있습니다).
 
둘째, “오직 은혜”(Sola Gratia),

16세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로마 가톨릭교회의 구원관은 “공덕 축적설”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은혜보다도 자신의 행위가 더욱 중요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순례길 성지순례’가 유행인 듯 한데,  과거에는 성인들을 숭배하기 위한 순례였습니다. 어떤 사도나 성자로 불리는 사람의 유골이나 유품이 있는 곳에 가서 기도하는 것이지요. 인격 수양과 묵상을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필수 코스처럼 여겨졌습니다. 성지 순례, 금식 기도와 고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루터는 1511년 로마를 방문합니다. 자신도 면벌부를 사고, 영혼을 괴롭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릅니다. 그런데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 말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Le juste vivra par la foi."


이 하나님의 말씀이 번개처럼 그를 덮쳤습니다. 그는 일어나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우리의 고행이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En effet, c'est par la grâce que vous êtes sauvés, par le moyen de la foi. Et cela ne vient pas de vous, c'est le don de Dieu.”


그렇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깨닫고 고행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신앙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셋째, “오직 믿음”(Sola Fide),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구원이 어떻게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En effet, c'est l'Evangile qui révèle la justice de Dieu par la foi et pour la foi, comme cela est écrit: Le juste vivra par la foi.”(롬1:17)
구원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의 결과로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합니다. 루터는 "우리의 최고의 선은 그리스도를 믿는 이것 뿐"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3. 루터를 이은 개혁자들

루터를 이어 수 많은 개혁 운동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개신교의 개혁 운동은 사회의 옳지 못한 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는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었습니다. 개혁자들의 신앙적 양심과 지성에 뿌리를 둔 교회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의 문제점들을 논박할 수 있을 만큼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신학적 실력도 갖춘 신학 교수 였습니다.


스위스의 츠빙글리(U. Zwingli),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로 활동했던 정 꺌방(J. Calvin)등 많은 개혁가들이 활동하면서 진정한 신앙의 길을 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습니다. 특히 꺌방의 신학 사상을 따르사람들은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는 ‘고이센’이란 이름으로, 영국에서는 ‘청교도’라는 이름으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교회’로 활발하게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에 교회가 변하고사회가 개혁되어갔습니다.

    3. 결론 : 나의 종교 개혁


저는 지난 수련회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은  개신교 유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 우리가 이 곳에 살면서 모르고 지나쳐서는 안 될 곳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의 종교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개신교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가 썩었다’,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목소리들이 높아갑니다. 어떤 교회는 자유주의에 영향을 받아서 무신론에 가까운 신앙을 추구하면서 사회 운동에만 집중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교회 다니면 축복 받고 돈 많이 벌고 출세한다는 이야기만 들려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환상을 보거나, 갑자기 쓰러지거나, 뭔가 신비로운 체험을 해야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하며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예배를 그저 뭔가를 보여주는 공연처럼 여기는 교회도 있습니다. 예배와 삶이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들을 바라보면서 교회가 타락의 온상이 되어 간다고 걱정을 많이 합니다.


이러한 문제가 왜 생깁니까? 그리고 왜 사람들이 그런데 쉽게 현혹되고 끌려 다닙니까? 수 많은 이단들이 판치는데 이미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들이 왜 거기 휩쓸립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지도 공부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꾸만 엉뚱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주는 진리의 빛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은 이 점을 명심합시다. 세상 끝 날까지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이 담긴 말씀을 묵상하며, 그 풍성하신 은혜 안에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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