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7장8 - 10절/ 내 인생을 회고할 때는 …

1. 서론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어떤 부자가 죽기 전에 간절히 기도를 했답니다. 자기가 그동안 땀흘려 번 재산을 두고 가기가 너무 아까우니 천국에 갈 때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에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네 기도가 응답 받았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트렁크 가방 하나에 채운 재산만 인정한다”는 것이습니다.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부자는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현금으로 채울까? 주식으로 채울까? 명품으로 채울까? 결국 부자는 황금 덩어리로 채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부자는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하고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는 동안 아주 큰 고생을 했습니다. 트렁크 무게 때문이었습니다. 황금이 든 큰 트렁크를 가지고 낑낑대며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문을 지키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무엇을 그렇게 힘들게 갖고 오십니까?" 부자는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제 재산인데 특별히 허락을 받고 갖고 오는 겁니다." "그래요? 여태껏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허락을 받았다니 놀랍군요. 그럼 어디 좀 볼까요?"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며 가방을 열게 했습니다. 가방이 열리니 눈부신 황금빛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부자는 얼굴의 땀을 닦으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천국의 모든 길이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는데 겨우 도로 포장 재료를 가지고 오려고 그렇게 땀을 흘리며 고생을 했단 말입니까?"


물론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입니다만 성경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만든 이야기 같습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21절 말씀에 보면,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겨우 도로 포장재료에 불과한 금덩이 때문에 오늘 우리는 얼마나 전전 긍긍하며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오늘 이야기는 야곱이 인생을 거의 마쳐갈 무렵에 있었던 이야기 입니다. 야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요셉이 살아서, 그것도 당대 세계 최고의 국가였던 이집트의 파라오(바로)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족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바로 왕을 알현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그 때 야곱이 했던 이야기 입니다.
   
2. 본론


(1) 험악한 세월을 살았던 야곱

야곱은 나이를 묻는 바로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 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Jacob répondit au pharaon: «Ma vie errante dure depuis 130 ans. Elle a été courte et mauvaise, et elle n'a pas atteint la durée de la vie errante de mes ancêtres.»”


야곱은 자기가 130세라고 소개를 합니다. 지금 나이로 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나이인데도, 요셉은 조상들의 나이에 비하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처럼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은  180세를 살았고,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175세를 살았지요. 그에 비하면 130세는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 이 만남 뒤에 17년을 더 살아서 147세까지 살긴 하지만 부모님의 나이에는 미치지 못하죠.


성경에 기록된 나이에 대하여 의심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당시의 자연 환경과 인간의 생리적 상태가 지금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바른 판단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의 나이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런 일정한 변화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류의 조상 아담의 나이는 930세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무두셀라라는 사람인데, 나이가 무려 969세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점점 줄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노아의 홍수 이후에 급격하게 나이가 줄게 됩니다. 노아는 950세까지 사는데, 그 아들 셈은 600세, 그 다음부터는 400세, 200세 이런 식으로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지금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나이들이지만, 노아 홍수 후부터는 엄청난 자연 환경 변화들이 일어나 사람들의 수명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야곱은 자기가 살아온 130년의 삶을 회고하면서 험악한 세월이라고 요약하였습니다. 아마 이때, 야곱의 머리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모든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을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험악한 세월이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2) 험악한 세월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은 야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살펴 보아도, 바로 그 아들 요셉도 그렇지요? 아버지 야곱에 못지않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욥은 고난의 대표적 인물이지요 ? 모세도 그랬고,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윗 같은 사람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저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요, 누구든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외모에서 느끼지 못했던 가슴 아픈 과거들이 다 있더군요. 


우리는 흔히 예수를 잘 믿으면 인생이 험악하지 않고 평탄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주위에서 어떤 분이, “ 나는 예수님 믿고 나서 돈도 많이 벌고, 취직도 잘 되고 하는 일마다 모두 다 잘 된다! ”고 그러거든 그 사람 말 다 믿지 좀 걸러서 들으세요. “ 뻥이 좀 심하시군! ”


어쩌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인생은 누구나 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90편10절 말씀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La durée de notre vie s'élève à 70 ans, et pour les plus robustes à 80 ans, mais l'orgueil qu'ils en tirent n'est que peine et misère, car le temps passe vite et nous nous envolons.”


여러분들도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볼 때에 삶이 그렇게 평탄하지 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험악합니까? 성경은 그 원인을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뒤틀어져 버린 결과라고 말씀합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을 떠난 후,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며 자기만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과 슬픔보다는 자신의 행복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문제를 해결해 줍니까?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까? 지난 주 인터넷 신문에, "행복은 살 수 없었던 여성 최고 부자"라는 제목이 있어서 한 번 살펴 보았더니, "세계적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 최대 주주, 베탕쿠르 씨가 파리의 저택에서 95세로 굴곡진 삶 마감"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더군요. 고인의 삶에 대하여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지만, 전 세계 14번째 부호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여성 분의 인생을 이렇게 평가하는 기사 제목을 보니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3) 험안한 인생에서의 도피

우리가 이미 잘 아는 것처럼, 많은 돈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명예를 누리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오히려 험악한 세월을 유지하게 하는 것일 때도 많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이 땅에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 받아낸 후에 아버지를 멀리 멀리 떠났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짜릿한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것들은 다 언젠가는 바닥이 나 버릴 유한한 것들이었습니다. 음식 냄새를 맡은 파리들처럼 그에게 달려들었던 수 많은 친구들은 그가 가진 것이 떨어지자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험악한 인생’인 것입니다.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는 더 이상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여기는 행복해 보기기는 하지만 행복한 곳이 아니야, 자유로운 곳인 것처럼 보이지만 노예로 살아야 하는 곳이었어. 이곳은 내가 아낌없이 버리고 떠나야 할 곳이야,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는 것이었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실 아버지! 그 분께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험악한 세월을 벗어나는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아버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그를 변함없이 기다리시는 아버지 !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 주시는 아버지 !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고 아낌없이 주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여전히 계셨습니다. 아버지에게 가면 그에게 아무 것도 없어도 됩니다.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감으로써 그의 ‘험악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4.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야곱은 자신의 험악한 세월을 다 통과한 후에,  이제 이집트의 바로왕 앞에서 그 험악한 세월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회고할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7절 말씀에서,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Au contraire, dans tout cela nous sommes plus que vainqueurs grâce à celui qui nous a aimés.”
라고 하였습니다. 비록 우리는 우리의 삶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있을찌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겼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험악한 삶을 살아갈 때에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또 감당할 수 없을 때는 피할 길을 열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고 넉넉히 이겨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해서, 또는 알긴 하지만 일시적인 충동과 욕심으로 죄에 빠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험악한 세월을 초대(자초)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설령 그와 같은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하셔서 더욱 하나님께 합당하고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죄로 인하여 일어난 고통스러움 속에 빠졌다고 할 지라도, 거기서 하나님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끝까지 붙잡으시고 ‘험악한 세월’의 장소를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야곱 인생의 전반기는 참 그렇고 그런 인생이었습니다. 야비한 배신자,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부모도 형제도 모르는 교활한 인간이었습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 남을 속였던 사람입니다. 그로 인해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집을 떠나야 했고, 남의 집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온갖 비 인격적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세월’ 속에서 그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듬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의 인생을 이끌어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험악한 세월’에서 벋어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도 고난과 역경을 통하여 새롭게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 ‘험악한 세월’같이 보일 지라도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를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시며,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마치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우리가 마지막으로 우리의 인생을 회고할 때, 우리는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되돌아 보게 될까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잘 알려진 한국의 천상병이라는 시인의 <귀천(歸天)>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분은 천주교인으로 생활하다가 나중에는 개신 교회로 신앙생활을 하셨던 분이시지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