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3장 36 – 43 /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날 사람 

1. 서론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 속에도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진심이 무엇인 지를 알기 원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말씀은 앞에서 24-3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풀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사람을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곤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 비유에 특히 많이 등장합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밭에 심긴 가라지 비유’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이 비유는, 세상의 끝이 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을 하셔서 한 부류의 사람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시고, 다른 사람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농부가 씨를 뿌리는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2. 본론


(1) 좋은 씨앗과 가라지 비유


어떤 사람이 자기의 밭에 좋은 씨앗들을 뿌려 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고 나서 보니 이상한 풀이 함께 자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라지입니다. 싹이 나고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똑같아 보이더니 조금 자라 꽃이 피고 열매가 나는데 보니 심었던 곡식이 아닌 것입니다.


집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이것을 보고서, “주인님, 우리가 분명히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이게 웬일일까요? 우리가 저 가라지를 뽑을까요? ” 이렇게 말한 이유는 가라지가 섞여 있으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곡식이 아닙니다.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결국 버려야 합니다. 일반 곡식보다 땅에서 양분을 더 많이 뽑아 먹기 때문에 다른 곡식에게는 손해입니다. 게다가 수확할 때 섞여 버리면 다음 해에 가라지를 파종하는 결과가 올 수 도 있습니다.


주인은 말합니다. “ 그냥 놔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 잘못하면 곡식까지 뽑을 수가 있다. 내가 추수 때까지 놔 두었다가 추수 때에 추숫군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서 불사르고 내 곡식은 모아 내 곳에 넣어라’라고 말하겠다! ”
 
(2) 이에 대한 오해들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오해합니다. 꼬투리 잡아서 반론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모두를 구원하셔야지, 어떤 사람들은 지옥의 불구덩이에 던져 넣으시는가?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그리 잔인하실 수 있는가?’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있는데도 유독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지옥 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만 보이는 경우는 무엇일까요?


왜 그럴까요? 그들은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받아야 할 응당한 심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적극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기회들을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들


첫 째는, 하나님의 법을 선명하게 보여 주시며 이 법을 통하여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이 법을 따라 다스리십니다. 장차 이 법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 법 속에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지가 드러나 있습니다. 아무런 원칙도 질서도 없는 분이 아니라, 공평하신 하나님, 질서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속에서 이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절 말씀에 보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하리라.  En effet, les perfections invisibles de Dieu, sa puissance éternelle et sa divinité, se voient depuis la création du monde, elles se comprennent par ce qu'il a fait. Ils sont donc inexcusables,”


라고 하였습니다.

둘 째는, 양심을 통한 기회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통하여 주셨는데,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 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하여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양심’이라는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로마서 2장 12-15절 말씀에,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2 Tous ceux qui ont péché sans la loi périront aussi sans la loi, et tous ceux qui ont péché sous la loi seront jugés au moyen de la loi. 13 En effet, ce ne sont pas ceux qui écoutent la loi qui sont justes devant Dieu, mais ce sont ceux qui la mettent en pratique qui seront déclarés justes. 14 Quand des non-Juifs qui n'ont pas la loi font naturellement ce que prescrit la loi, ils se tiennent lieu de loi à eux-mêmes, bien qu'ils n'aient pas la loi. 15 Ils montrent que l'oeuvre de la loi est écrite dans leur coeur, car leur conscience en rend témoignage et leurs pensées les accusent ou les défendent tour à tour. 16 C'est ce qui paraîtra le jour où, conformément à l'Evangile que je prêche, Dieu jugera par Jésus-Christ le comportement secret des hommes.


마음 속에 있는 ‘양심’이라는 장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아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하게 되면 양심에 가책을 받게 됩니다. 왠지 마음 속에서 거부감을 느낍니다. 지금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하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주신 기회들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 드린 것처럼, 율법을 가지고는 죄만 더 드러날 뿐입니다. 본질 상 죄인인 인간의 능력으로는 율법을 완전히 이룰 수 없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바라보다 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사건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17절을 이렇게 말합니다.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6 En effet, je n'ai pas honte de l'Evangile [de Christ]: c'est la puissance de Dieu pour le salut de tout homme qui croit, du Juif d'abord, mais aussi du non-Juif. 17 En effet, c'est l'Evangile qui révèle la justice de Dieu par la foi et pour la foi, comme cela est écrit: Le juste vivra par la foi.


이 수많은 기회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것을 다 거부하고, 하나님의 공의에 저항하고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수 많은 방법으로 기회를 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부르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들, 악인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불평할 것이 아니라 ‘좋은 곡식을 선별하셔서 하늘 곳간에 모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할 것입니다.  
 
(4)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날 사람들


저는 여기 있는 우리가 모두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나는 사람들이 되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43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43 Alors les justes resplendiront comme le soleil dans le royaume de leur Père. Que celui qui a des oreilles [pour entendre] entende.


의인은 누가 의인입니까?  조금 전에 읽었던 말씀처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좋은 곡식이 된 사람입니다. 자기의 공로나 자기의 노력이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comme cela est écrit: Le juste vivra par la foi.


그렇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자녀가 된 사실을 알고, 하나님 나라, 아버지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해같으신 하나님처럼 해같이 빛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3. 결론


예수님께서는 “귀 있는 자는 들으라 Que celui qui a des oreilles [pour entendre] entende.”고 강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이것을 들을 귀를 가졌는가?’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가만 두지 않으려 한다고 할 지라도 흔들리지 맙시다.  온갖 의심과 불평의 소리들이 들려와 여러분을 흔들어도, 거기에 유혹 받지 맙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는 복된 사람으로, 영원을 준비하는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 갑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