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사람 / 고린도 전서 15장 12-26


1. 서론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2천 년 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무덤이 예수님을 가둘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문을 활짝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세 명의 여자들이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갔습니다. 세 명 모두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발라 드리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한 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돌문이 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거기에는 예수님께서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큰 두려움과 근심과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왜 근심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이야기 합니다.  누가복음 24장 5-6절 말씀에,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사실, 여인들이 진짜 근심한 이유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은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셨지만, 그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부활에 대한 불신은 오늘날에 더 심각합니다. 지난 2007년에 방영된 디스커버리 채널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탈피요트’라는 예루살렘 근처 지역에서 예수님께서 묻혔던 동굴과 예수님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큰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이 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분이 당시 이 다큐멘터리의 프로듀서이자 디렉터 였는데, 카메론의 주장에 의하면, 1980년 1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10개의 유골 상자가 예루살렘 근처의 고대 무덤에서 발견되었는데, 예수님의 가족과 제자들 중 일부와 동일하거나 비슷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 예수, 마리아, 마리아메네 에 마라, 마태, 예수의 아들 유다 등의 이름들 입니다. 카메론은 이것을 근거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었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유다’라는 아이를 낳기까지 했었던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이 일은 당시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고학자들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근거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이 유골함들이 고대 무덤에서 발견된 것은 맞지만, 이미 예루살렘에서만 수 천 개의 유사한 무덤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이름들은 1세기에 매우 흔한 이름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당시 여성들 중 25%가 ‘마리아’라고 불렸습니다. 10명 중 1명은 “예수아(예수)”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무덤들에서 '예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남자를 1,000명 이상 찾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학자들 중에는 이 외에도 이 무덤이 예수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을 10가지 이상 제시할 수 있다고 덧붙여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수의 성서 고고학자들은 이 주장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서 인기를 얻고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이라면서 이 무덤이 예수님의 무덤이라는 것을 입증할 증거가 전혀 없다고 말해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사방에 퍼져 나가 사람들에게 전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린도 전서라는 성경이 기록되고 있던 시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으니 오늘 날에야 오죽 하겠습니까? 
 
2. 본론


(1) 부활이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고린도 전서는 A.D. 54년 경, 고린도 후서는 A.D.55년 경에 씌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지 최소한 20여 년이 지난 후 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주 활성화된 교회였습니다. 사람들도 많이 모이고, 성령의 은사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에,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Or, si l'on prêche que Christ est ressuscité, comment quelques-uns parmi vous peuvent-ils dire qu'il n'y a pas de résurrection des morts?”


사도 바울은 부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수 많은 증인들을 제시합니다. 3절부터 8절까지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었던 것을 보여 줍니다.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3-8절 말씀,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게바는 베드로)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3 Je vous ai transmis avant tout le message que j'avais moi aussi reçu: Christ est mort pour nos péchés, conformément aux Ecritures; 4 il a été enseveli et il est ressuscité le troisième jour, conformément aux Ecritures. 5 Ensuite il est apparu à Céphas, puis aux douze. 6 Après cela, il est apparu à plus de 500 frères et soeurs à la fois, dont la plupart sont encore vivants et dont quelques-uns sont morts. 7 Ensuite, il est apparu à Jacques, puis à tous les apôtres. 8 Après eux tous, il m'est apparu à moi aussi, comme à un enfant né hors terme.


이렇게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이 땅에 더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왜 40일을 머무셨을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부활을 더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찾아왔던 여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도 보여 주시고, 12 제자에게, 500여 형제에게, 사도 바울에게, 도마에게,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한결같이 주님을 믿고 따르는 진정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그를 죽이려고 달려든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이기 위하여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교회사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들을 보면 사도 베드로 역시 장렬한 죽음을 맞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음 후에 영원한 부활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도마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그런데 8일 뒤에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도마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어요.  요한복음 20장 27절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Puis il dit à Thomas: «Avance ton doigt ici et regarde mes mains. Avance aussi ta main et mets-la dans mon côté. Ne sois pas incrédule, mais crois!»”


도마는 그 후 인도로 선교를 떠나 선교를 하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인도에 가면 성 도마 교회가 있는데 아직도 예수님의 옆구리에 넣었던 도마의 손가락이 보존되어 있다고 합니다. 도마가 순교하기 전에 동아시아 선교 과정에서 중국의 깊은 곳까지 선교하고 인도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중국의 깊은 곳이 바로 한반도로 지역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경상북도 영주시 강동리 라는 곳에 가면 머리가 없는 특이한 불상이 있는데, 옆에 있는 글씨가 히브리어로 ‘토마’라고 적혀 있고, “야소 화왕 인도자”이라는 글도 적혀 있습니다. ‘꽃의 왕이신 예수,  인도자’라는 뜻이지요. 이것을 바탕으로, 도마가 선교하던 중국의 깊은 곳이 바로 한반도 지역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부분은 아직 깊은 연구가 되지 않아서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이전일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 앞에서 피하려 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면서도 감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도마가 아무도 찾지 않는 인도에까지, 중국 깊은 곳까지 찾아다니며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하였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실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그 부활이 바로 나의 부활의 증거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절 말씀에,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Mais en réalité, Christ est ressuscité, précédant ainsi ceux qui sont morts.”


예수님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나셨고, 그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에 우리 모두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의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가정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잠시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의 의미를 진단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가정해 본다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못하셨겠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께서 하셨던 모든 말씀을 진리라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독교의 모든 믿음이 헛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는 모든 것은 헛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있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런 ‘마음 속에서의 부활’이 아니라 실제적 사건이었습니다.

3. 결론 : 부활의 기쁨에 참여할 사람은 누구인가?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스퍼전 목사님께서 하루는 길을 가다가 새장 속의 새를 괴롭히는 어떤 괴팍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 얘야, 그 새를 어떻게 할 거니? ” 스퍼전이 묻자, 아이는 “괴롭히다가 죽일 거예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퍼전은 2파운드를 주고 그 새를 사서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이틀 후 부활 주일에 스퍼전은 이렇게 설교했다고 합니다. “ 여러분, 마귀는 인간을 괴롭히다가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주는 엄청 난 값을 지불하고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요, 부활의 역사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 아름다운 부활 주일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활에 대하여 어떤 소망을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En vérité, en vérité, je vous le dis, celui qui écoute ma parole et qui croit à celui qui m'a envoyé a la vie éternelle; il ne vient pas en jugement, mais il est passé de la mort à la vie. ”

그렇습니다, 여러분! 더 이상 사망이 여러분의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죽을 사람처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보십시오. 죽어 4일이나 지난 나사로, 사망의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향하여, “ 나사로야, 나오너라! ” 말씀하시자 죽었던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 사망의 냄새는 다 사라지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살아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En vérité, en vérité, je vous le dis, celui qui écoute ma parole et qui croit à celui qui m'a envoyé a la vie éternelle; il ne vient pas en jugement, mais il est passé de la mort à la vie.”

과거,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죽음이 우리의 왕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죽음 앞에서 좌절하고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였으나 헛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극복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힘차게 살야야 할 인생입니다. 믿으십니까?


이 부활의 날에 이 부활의 기쁨이 가득한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